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가수들의 명반에 공통되게 이름을 올린 이가 크리스천 음반사 휫셔뮤직의 유지연(63) 대표다. 그는 최고의 어쿠스틱 기타리스트요, 싱어송라이터, 정상급 편곡자, 프로듀서로 국내 포크와 팝 계열의 수많은 앨범 제작에 참여했다. 최근 서울 여의도동 국민일보 사옥에서 만난 유 대표에게 그 많은 앨범 중 최고의 음반을 꼽아달라고 했다. 답은 의외였다.
“두란노 경배와찬양과 예수전도단의 음악입니다. 이들 앨범은 히트를 떠나 우리나라 ‘찬양과 경배’라는 실질적인 예배운동을 일으켰고, 제가 조금이라도 그 일에 힘을 보탤 수 있었다는 게 감격스러울 뿐입니다.”
유 대표는 세션으로 가장 잘 나갈 때 소리 소문 없이 두란노 경배와찬양 뮤직디렉터로 자리를 옮겼다. 기타를 한번 연주하면 돈을 가장 많이 벌었을 30대 절정의 나이. 기적 같은 체험적 신앙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은퇴를 선언하지도 않았다. 그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랐을 뿐이다.
“많은 이들은 세상 일과 하나님 일을 구분하는데 저는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어디서든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 열심히 믿으며 최선을 다하면 후회가 필요 없는 인생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원더걸스’의 선예가 어린 나이지만 참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 핵심적인 믿음의 뿌리가 있었기에 그는 가수로 최선을 다했고 선교사와 결혼했습니다. 저 역시 남들이 말하는 최고의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문득 유 대표의 신앙의 뿌리가 궁금했다. 대단한 믿음의 가문에서 신앙교육을 받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불교집안에서 태어났고 1대 신앙인이었다. 믿음생활도 우연히 시작했다. 온갖 자만심으로 꽉 차 있던 1980년대 중반, 한 전도사가 집으로 전도하러 왔다.
“책을 많이 읽고 성경공부를 해서 비록 교회는 다니지 않았지만 머리에 든 게 많다고 자신하던 때였습니다. 당시엔 목사님들이 집집마다 전도를 많이 다녔는데, 저와 성경말씀 내기를 하면 다들 지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젊은 전도사와 말씀 내기를 했다가 제가 완패하고 만 겁니다. 지고는 못 사는 저였기에 오기가 생겼고 그 날부터 관주·공동번역·영어성경을 옆에 끼고 4개월 동안 독파했지요. 그러다 주님을 만났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을 읽는 순간 뜨거운 전율을 느끼면서 왈칵 눈물을 쏟았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렇게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몇 년 뒤인 89년, 유 대표는 두란노 경배와찬양 초대 뮤직디렉터로 사역하며 이젠 대중가수가 아닌 예수전도단, 다윗과요나단, 주찬양, 사랑이야기, 손영지, 최미 등 여러 찬양사역자들의 앨범에 이름을 올렸다.
94년엔 ‘음악으로 사람을 낚는다’란 의미로 휫셔뮤직도 설립했다. 휫셔는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Fisher)가 되게 하리라’(마 4:19)는 말씀에서 가져왔다. 그는 휫셔뮤직을 통해 전 세계 워십뮤직을 국내에 알리고 배급하는 일을 맡고 있다. 힐송 빈야드 킹스웨이 새들백 등을 처음 소개한 이가 유 대표다. 2000년 이후부터는 국내 CCM 음반 제작뿐 아니라 도서출판 휫셔북스를 통해 찬양과 예배에 관한 책들도 출판하고 있다.
지난달 오랜만에 기타연주와 말씀노래를 담은 앨범 ‘오 할렐루야’를 발표한 유 대표는 기독교 음반시장의 활성화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디지털 음악 때문에 음반 구입이 줄었고 그렇다보니 음반 시장이 침체됐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면의 문제를 터치하는 음악이 나오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스킬 좋은 가수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영성을 갖고 사람의 마음을 감동 감화시키는 건 기술이 좋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CCM 가수이기 이전에 먼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 예배자의 삶, 말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높은뜻푸른교회 예배담당 장로인 유 대표는 하반기쯤 가요앨범을 발표할 계획이다. 또 K-POP처럼 K-CCM의 열풍도 기대하고 있다. “일본 홍콩 태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등 아시아의 크리스천 음반 기획사들과 비전을 공유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크리스천 아티스트들을 발굴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맡기시려고 제게 음악을 잘 할 수 있는 달란트를 주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