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지나 궁궐에 다시 차려진 '황제의 식탁'

▲ 5월 1일 덕수궁 중명전에서 외국인 체험객을 대상으로 한 

▲ 5월 1일 덕수궁 중명전에서 외국인 체험객을 대상으로 한 '황제의 식탁' 이 영어로 진행되고 있다.

 

서울 = 전미선 기자 msjeon22@korea.kr 

사진 = 이정우 기자 b1614409@korea.kr

1905년 대한제국. 또 다른 대국의 손님이 온다. ‘대인배의 나라’ 미국이다. 을사늑약 체결을 불과 두 달 앞둔, 위태로운 대한제국의 운명을 바꿔줄 수도 있는 존재.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딸, 앨리스 루즈벨트에게 어떤 연회를 대접해야 할까?

 

▲ 귀빈을 연회장으로 안내하고 있는 궁녀

▲ 귀빈을 연회장으로 안내하고 있는 궁녀

 

그로부터 120년 뒤, 그 만찬이 궁궐에서 다시 차려졌다.

봄을 맞아 서울의 5대 궁과 종묘를 무대로 ‘궁중문화축전’이 지난달 26일 11번째 막을 올렸다. 매년 수십만 명이 즐기는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문화유산 축제다.

특히 올해엔 덕수궁 중명전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황제의 식탁’이 첫선을 보였다. 행사는 대한제국 황실의 정찬을 직접 맛보며 영어 해설로 그 배경과 의미를 듣는 체험형 프로그램. 대한제국 시대, 황제가 서양 손님을 맞기 위해 준비했던 식탁의 분위기를 생생히 재현한 것이 특징이다.

 

▲ '황제의 식탁' 에서 재현한 음식. 오른쪽 하단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골동면, 전복초, 화양적, 초장, 전유어, 편육 그리고 장김치


식탁엔 골동면, 장김치, 화양적, 전복초, 전유어, 편육, 초장 등 당시의 메뉴를 바탕으로 구성된 정찬이 정갈하게 올랐다. 디저트까지 갖춰진 상차림은 궁중의 정성과 자존심이자 외교의 장에서 '우리 음식'으로 국격을 표현하고자 했던 고종 황제의 철학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 국가무형문화재 궁중음식 기능보유자인 한복려 씨가 본 기자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 국가무형문화재 궁중음식 기능보유자인 한복려 씨가 '황제의 식탁' 기획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 모든 음식을 고증하고 복원한 이는 국가무형문화재 궁중음식 기능보유자인 한복려 씨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궁중음식은 우리가 지켜야 할 귀한 문화유산입니다. 지금 K-푸드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음식들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궁중음식으로 한국 음식의 깊이와 다양성도 함께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개항 이후,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며 전환점을 맞던 대한제국. 통설에 따르면 서양 손님에게는 서양식 코스 요리를 대접했다고 알려졌다. 이번 ‘황제의 식탁’은 오히려 그 시대에도 ‘우리의 것’으로 외교 무대에 나섰던 선조들의 지혜와 자부심을 되새기게 한다.

 

▲5월 1일 궁중문화축전 중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5월 1일 궁중문화축전 중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황제의 식탁' 이 열리고 있는 덕수궁 중명전 

 

서양식 건축물인 중명전에서 한식 상차림으로 펼쳐진 1905년의 만찬. 그것은 국가의 운명을 건 외교전이자 위엄과 품격, 자존심으로 채워진 대한제국의 식탁이었으리라. 그 속엔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천명한 “구본신참(舊本新參)”, ‘옛 것은 지키되, 새것을 취한다’는 정신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날의 정성이 지금, 우리의 봄 속에서 다시 피어나고 있다.

 

올해 11회를 맞는 ‘궁중문화축전’은 서울의 5대 궁궐(경복궁.창덕궁.덕수궁.창경궁.경희궁)과 종묘에서 매년 봄과 가을에 개최된다. 올해엔 4월 26일부터 5월 4일까지 9일간 펼쳐진다. 외국인을 위한 사전 예매프로그램도 준비됐다. 행사의 세부적인 내용은 궁중문화축전 영문 누리집(http://www.kh.or.kr/fest/en)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출처 - KOC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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